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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진 나루터, 한국의 피아노 문화를 태동하다.

등록일 2013년04월09일 17시55분

사문진 나루터, 한국의 피아노 문화를 태동하다.
한국 최초의 피아노 유입과정 고찰 심포지엄 개최

5일 오전 11시30분, 달성문화재단은 화원읍사무소 회의실에서 김채한 달성문화재단 대표, 최삼룡 달성부군수, 김성우 매일신문 기자 및 지역주민 100여명이 참석해 한국 최초의 피아노 유입과정 고찰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한국음악사 연구가인 한국음악문헌학회 손태룡 대표는 논문 발표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는 1900년 3월 26일 한국의 5대 선교사로 대구에 온 사이드 보텀(한국이름·사보담)의 아내 에피가 사용한 것으로 달성군 화원의 사문진 나루터로 피아노가 유입된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기존의 학설은 1901년 5월 동산병원을 설립한 존슨 선교사의 아내 에디드 파커의 피아노로 화원 사문진 나루터를 통해 대구에 들어온 이후 1907년 개교한 신명여학교에 기증된 것이였다.
이번 발표를 통해 한국 최초의 피아노는 기존 알려진 내용보다 1년 2개월 앞서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손대표는 사보담이 미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1900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미국으로부터 가져온 피아노를 화원 사문진 나루터에서 내려 대구 종로의 집까지 3일간에 걸쳐 옮기는 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3일간의 피아노 운반 과정을 보면 첫째날, 사보담은 일꾼 30여명을 고용해 집에서 16km 떨어진 사문진 나루터에 도착해 피아노를 밧줄로 옮기려 했으나, 고용된 일꾼들은 밧줄로 피아노를 옮길 수 없고 짚을 이용한 밧줄을 만들어 상여 모양의 운반 기구를 만들었다. 둘째날은 논과 밭, 좁은 길을 헤쳐 11km를 이동하였으며, 셋째날 집에 도착했다.

영국 태생인 사보담은 1899년부터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대구지부서 1년간 근무하고 부산지부로 옮겨 1907년까지 7년간 활동한 뒤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간 그 이듬해 12월 3일 화재사고로 사망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유입된 사문진 나루터에서 달성문화재단은 달성군 개청 100년을 맞아 올 가을, 작년에 이어 "100대 피아노 콘서트" 등 다양한 축하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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