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옹알이 _ 우보 만보(漫步)
수필가_하종혁
아이가 말을 배울 때, 엄마는 하루에도 열두 번 거짓말쟁이가 된다. 갓난아기의 옹알거리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야 엄마의 통역이 터무니없다고 말하기 십상이지만 그게 뭐 대술까. 아기는 엄마의 따스한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신을 한껏 드러내고는 드디어 세상과 이어지는 다리를 가뿐하게 건너게 된다.
옹알이는 축복이다. 아이가 말을 하자면 먼저 소리를 내는 게 우선이니, 옹알이야말로 말을 배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과정이다. 일종의 ‘음성놀이’라고 하는데, 갓난이는 자신이 내는 옹알이 소리에 재미를 느껴 쉼 없이 연습한다. 옹알이를 끈기 있게 지속하는 힘은 주변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상대방의 반응이 없으면 그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되는 게 당연하다. 육아원에서 자란 아이나 청각 장애가 있는 어린애들이 잘 울지 않고 옹알이도 아주 적게 나타나는 게 그런 이유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세상과 통하는 길은 자연히 좁을 수밖에 없다.
막냇동생은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이태 동안의 대학 생활 후 군에서 제대한 지 보름쯤 지났을까, 그가 내 손을 슬며시 잡았다. 한 일 년 인도를 여행했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차마 그 손은 뿌리치지 못한 채 동생의 눈을 피하고 말았다. 그는 졸업하면서 신문사 입사 시험에 두어 차례 낙방하고, 결국 대기업의 영업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십여 년 동안 어렵사리 직장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여생을 글에 매달려 살고 싶다고 넋두리했다. 나는 이번에도 왼고개를 젓고 말았다.
나는 이제야 때늦은 옹알이를 하는 중이다. 망칠의 나이를 꼽으며 살면서 무슨 객쩍은 소리냐고 할 테지만 한치 어김없는 사실이다. 딴에는 글을 쓴답시고 바지런을 떨어도 글은 좀처럼 늘지 않고, 남이 관심도 없는 소리만 주절이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옹알이만 하면 다행이겠다. 어린애의 그것은 듣는 이에게 희망이라도 주지만, 윤기 빠진 위인이 웅얼대는 소리는 세상에다 시끄러운 소리만 하나 보태는 것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아내는 어쩌다 내 글을 읽고는 턱없이 호들갑을 떤다. 시답잖은 글과 생씨름하는 남편이 딱해서겠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나는 애써 어깨를 으쓱인다. 글판에서 만난 문우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어쭙잖은 글을 서로 추켜세운다. 그나마 옹알이를 받아주는 이가 주위에 있다는 게 어딘가.
하지만 내 글은 꼬장꼬장하게 지적하면서도 조카들에게는 나를 아버지 맞잡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막냇동생을 보면서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난날 그렇게 원하던 해외여행 한 번 보내지 못한 죄밑에 더해, 취업 재수라는 말을 어렵게 꺼냈을 때 기꺼이 어깨를 두드려주지 못한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다. 더욱이 혼자 객지에서 생활하는 탓인지 형제가 한자리에 모이면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낸다. 누가 제 말 도중에 끼어들기라도 할까 봐 조바심을 내가면서…. 그것이 막냇동생의 때늦은 옹알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나는, 그의 말에 연신 맞장구를 쳐가며 깊이 속울음을 삼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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