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7일 고령서 무형유산 공개행사… 제자 김재철 전수자 시연 나서
_ 1953년 입문해 전국 누비며 섭렵… 가야 토기 재현에 일생 바쳐
_ 1,250도 고온 견뎌낸 '자기'의 미학… 이남철 군수 "소중한 가치 지킬 것“
백영규 사가장의 제자 김대철 전수자가 7일 고령군 개진면 무형유산 전수교육관에서 열린 공개행사에서 전통 발물레를 이용해 달항아리를 제작하는 시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고령군 제공
[고령(경북)=더피플매거진] "풍영 만월(豊盈 滿月), 그득하고 풍성하여 가득 찬 달이 되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직 흙과 불에 기대어 온 노(老)장인의 거친 숨결이 제자의 손끝을 타고 흘러, 둥글고 넉넉한 보름달 하나로 피어올랐다. 경상북도 무형유산 사기장(沙器匠) 백영규(호 토인·土人) 명장의 가르침을 품은 흙은 1,250도의 뜨거운 불길을 견뎌내며 영롱한 달항아리로 다시 태어났다.
경북 고령군은 7일 오전 개진면 무형유산 전수교육관에서 백영규 사기장의 공개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마을 주민 등 50여 명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이날 달항아리 제작 시연은 고령의 백 장인을 대신해 그의 제자인 김대철 전수자가 직접 나섰다. 백 장인의 평생 가르침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제자는 옛 방식 그대로 전통 발물레를 차고 장작가마를 지피며 흙이 달항아리로 완성되는 과정을 선보여 벅찬 감동을 안겼다.
사기장이란 조선시대 왕실의 식사를 담당하던 사옹원(司饔院)에 소속되어 사기(자기)를 제작하던 최고 수준의 장인을 일컫는다. 도자기는 굽는 온도와 재료에 따라 크게 도기(陶器)와 자기(瓷器)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뚝배기나 옹기가 1,200도 이하에서 일반 점토로 구워져 숨을 쉬는 '도기'라면, '자기'는 순도 높은 고령토를 빚어 1250도에서 1,400도에 이르는 초고온을 견뎌내야만 탄생한다. 흙이 완전히 유리질화되어 물이 스며들지 않고 맑은 금속성 소리를 내는 이 자기를 빚어내는 이가 바로 사기장이다.
이남철 고령군수가 7일 개진면 무형유산 전수교육관에서 열린 백영규 사기장 공개행사에서 가마에 불을 넣고 있다. 사진=고령군 제공
조선 후기 관요(官窯)가 폐쇄되며 도공들이 민간으로 흩어진 가운데, 현대에 이르러 고령에서 그 고고한 맥을 잇고 있는 인물이 바로 백영규 사기장이다.
그의 삶은 곧 한국 현대 도예의 산역사다. 1938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아버지와 함께 귀국한 그는 1953년 도예에 첫발을 내디뎠다. 광주 분원요 폐쇄 후 김천으로 내려온 도예인들에게 기술을 배운 것을 시작으로, 문경에서는 조선 막사발을, 이천에서는 청자를 섭렵하며 끊임없이 기법을 연마했다.
이후 1990년 대가야의 도읍지인 고령에 정착한 백 장인은 가야 토기와 분청사기의 재현에 남은 일생을 걸었다. 1992년 일본 고베문화원 초청 조선 막사발 전시 등 국내외를 누비며 한국 도자 문화의 우수성을 알렸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경상북도 무형유산 사기장으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에는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하는 영예를 안았다.
가마에 불을 넣는 작업을 함께 했던 이남철 고령군수는 "평생을 우리 전통 도예 기술을 지키는 데 전념하신 백영규 사기장의 공개행사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앞으로도 고령의 훌륭한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그 소중한 가치를 대대로 지켜나갈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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