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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훈장_우보 만보(漫步)

등록일 2026년07월08일 10시00분

[오피니언] 훈장_우보 만보(漫步)

 

 

수필가_하종혁 수필가_하종혁

 

가뜩이나 큰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스럽다. 오래전에 청각에 문제가 생겨 작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시어머니와 그러잖아도 목소리가 우렁찬 며느리가 앞다투어 소리를 높인다. 누가 들으면 고부간에 싸움이라도 난 줄 알겠다. 며느리는 노인이 입지도 않을 옷에다 왜 또 욕심내나 싶어 이미 열이 살짝 올랐다. 시어머니도 만만찮다. 나만큼 옷에 욕심 없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소리를 돋운다.

 

실은 이따금 겪는 일이라 낯설지는 않다. 이윽고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마음을 졸이던 나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어머니는 평소에 옷을 까다롭게 입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꼭 집어서 요구할 때는 그렇지도 않다. 우선 평상시에 입던 옷과는 가격부터 확연히 다르다. 옷 사는데 쓰는 돈을 유난히 아끼는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내 입이 벌어질 지경이니 말이다. 더 딱한 것은 그렇게 산 옷이 한두 번 입고는 옷장에 고이 모셔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옷이 한두 벌이 아니니 아내의 볼멘소리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쨌든 어느 한쪽을 편들 형편이 아니라서 속절없이 이방 저방을 서성인다.

 

문득 삼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맏이모와 셋째 이모가 당신들의 수의를 손수 지으면서 막냇동생의 그것도 같이 장만하면 어떠냐고 하셨다. 당시 환갑이 채 안 된 어머니의 수의를 들먹이는 것이 마뜩잖아 나는 왼고개를 저었고, 당신은 또 당신대로 수의를 미리 해 놓으면 공연히 오래 산다더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바야흐로 고부 사이의 신경전도 한고비를 넘긴 것 같다. 잠시 후면 여느 때처럼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앞세우고 백화점으로 향할 것이다. 평소엔 자주 들락거리는 곳이 아닌데도 이런 때는 굳이 백화점을 고집하는 아내가 밉지 않다. 더욱이 큰손녀까지 따라나선다 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마음이 홀가분해진 터라 윤달이 언제 드는지 달력을 넘겨본다. 전에 이모가 윤달에 수의를 미리 마련하면 당자가 무병장수하고, 자손들이 번성한다고 한 말씀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사진=더피플매거진 사진=더피플매거진

 

과연 고부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현관문을 나선다. 뒤따라 나가는 딸아이의 등에 대고 괜히 객쩍은 소리를 실었다.

 

옷이라는 게, 할매한테는, 말하자면, 훈장 같은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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