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곳니 _ 우보 만보(漫步)

김장헌 기자
2026년06월15일 19시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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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곳니 _ 우보 만보(漫步)

 

[오피니언] 송곳니 _ 우보 만보(漫步) : 더피플매거진
수필가_하종혁

 

 

송곳니는 동물이 먹이활동을 할 때 찢거나 뜯는 역할을 한다. 날카롭고 튼튼한 송곳니는 육식 동물의 생존에 없어선 안 될 무기지만, 코끼리와 같이 송곳니가 아예 없는 동물도 더러 있다. 인간의 경우 불의 발견, 다양한 조리법, 편리한 식사 도구의 발전 등으로 인해 송곳니가 퇴화를 거듭하여 이제는 음식을 씹을 때 겨우 보조 역할을 할 뿐이다. 유난히 큰 앞니와 터무니없이 작은 송곳니 때문에 어릴 때부터 놀림감이 되어 속상해하던 나에게, 두어 달 전부터 송곳니 하나가 말썽을 부린다.

 

밤이 이슥한데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한동안 뜸했던, 그러나 눈에 익은 번호다. 잠시 머뭇거리다 침대 머리맡으로 전화기를 밀쳐 버렸다.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려 밖으로 나갔다. 오래전에 끊은 담배가 곁에 있으면 한 대 피워물었으면 하는 충동이 일었다. 일없이 여기저기 거닐다 붉은 배롱나무꽃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방에 들어와 휴대폰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까 그 전화번호가 세 통이나 찍혀 있었다.

 

S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지방의 명문 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이십 년 가까이 시청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가 언제부터 못난 송곳니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십여 년 전에 이미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었다는 거다. 그는 초년부터 알던 친구들에게서도 심하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나는 그가 밉지는 않았다. 가끔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술을 조금 좋아하긴 해도 남에게 그다지 피해를 주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어느새 우리는 제법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정해진 수입이 없었다. 어쩌다 수중에 돈이 몇 푼 생기면 어김없이 연락이 왔다. 만나는 곳은 늘 재래시장의 국밥집이었다. 계산은 대체로 번갈아 했다. 그가 내게 하는 말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사노라면 누구나 아쉬웠던 때가 있기 마련인데, 그는 그런 순간을 마치 남의 말 하듯이 덤덤하게 읊조리곤 했다. 그의 말은 이미 여러 번 되풀이하여 들었는데도 이상하게 내게는 늘 처음 듣는 말처럼 생생했다. 그리고 그는 내 말을 언제나 귀를 쫑긋 세워 들었다. 언제부턴가 나도 마음에 깊이 묻어두었던 일을 그에게 스스럼없이 말하게 되었다.

 

그의 전화가 뜸하기라도 하면 도리어 내가 조바심을 냈고, 그런 내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하곤 했다. 친구는 돈이 떨어지면 연락하는 법이 없었으므로 만나는 날을 정하는 것은 대개 그의 몫이었다. 헤어질 때 그의 눈은 늘 아쉬움으로 그득하고, 그러면 나는 마치 어린애를 달래듯 했다.

 

우리, 자주는 아니라도 오랫동안 만나며 지내자.”

 

그러면 그는 애매하게 웃으며 아주 천천히 일어서곤 했다. 그러한 만남이 수삼 년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이태 전부터 그의 말은 점점 횡설수설이 되었다. 그전에도 그의 말에는 두서가 없었는데, 이제는 아예 서로 말을 섞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때로는 구슬려보고 간혹 얼러보았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는 없었다. 계산의 불문율은 벌써 깨졌고, 그의 전화는 밤낮이 따로 없었다. 당분간은 떨어져 지내는 게 좋겠다고 할 요량으로 그를 만났다. 하지만 그 말은 입 언저리에만 맴돌 뿐 엉뚱한 말만 주절거렸다. 그는 큰 눈에 눈물을 그득 담아 말했다.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하던 외아들이 요양병원으로 가기를 권한다는 것이다. 나는 짐짓 문밖을 무심하게 응시했다. 그는 깍지다리를 한 채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사타구니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 얼른 일어서고 말았다.

 

결국 송곳니를 뽑기로 했다. 작고 못생겨 늘 눈에 거슬리고 씹는 일마저 똑바로 못하더니, 마침내 가장 먼저 작별하는구나. 송곳니를 뽑으며 S를 떠올렸다. 얼마 전 전화기에서 들리는 S의 말은 본래도 흐릿한 말투에 탁한 숨소리가 짙게 배어있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해도 한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병원에 입원했는지 어떤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국밥집에서 한번 볼래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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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니

 

그래도, 내 송곳니처럼 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움푹한 송곳니 자국이야 이내 아물겠고, 몇 달 후엔 새뜻한 금속 이빨이 심기겠지. 그렇지만 내 몸에 짙게 밴 그의 체취는 쉬이 옅어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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