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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부처의 그림자 깃들다

등록일 2025년06월18일 11시04분
연못, 부처의 그림자 깃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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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후자
 
 
발끝을 따라 흐르는 바람이 계곡 물소리와 뒤섞인다. 계곡물은 바위를 타고 흐르면서도 소리 낮춰 속살거리고, 나뭇가지 잎새는 땅에 고요히 그림자 내려놓으며 침묵한다. 불영계곡을 따라 불영사로 가는 길 위다.

‘명상의 길’이라 표시한 표지판을 따라 걷는다. 새소리가 길을 열고, 바람이 뒤따르며 상쾌함을 선물한다. 이 길을 걷는 동안만큼이라도 세상 근심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비운다. 한 발 한 발 발자국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는다. 걸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내려앉으며 편안해진다. 

불영사 입구에 다다라 안내판을 보았다. 불영사의 볼거리와 보물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뜻밖의 횡재라도 만난 듯 설레었다. 볼거리와 보물이 꽉 들어찬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층 재발라졌다.

신라 진덕여왕 당시, 당나라에서 돌아온 의상대사가 경주에 머무르고 있었어. 어느 날 한 명의 노인과 여덟 명의 동자가 의상대사를 찾아온 거야. 그들은 동해를 수호하는 호법신장이었어. 이제 이 땅을 떠나기 전에 의상대사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며 말했어. 

“저희가 머물던 곳에 부처님을 모시려 했습니다. 그런데 인연이 닿는 스님이 없어 원력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그 뜻을 이루어 주셨으면 합니다.”

의상이 그 뜻을 수락하고 동해에 있다는 땅을 찾아 나섰어. 포항을 지날 때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 의상을 울진 바다까지 인도하였대. 그리고 울진 바다에서 올라온 용은 선묘룡이 되어 의상을 깊은 산속까지 안내한 후 한 마디 남기고 사라졌다는 거야.

“이제부터는 스님께서 직접 땅을 찾으셔야 합니다.”

산속 깊은 곳까지 들어선 의상은 며칠간 노인이 말한 땅을 찾아다녔어. 그러던 어느 날, 근처 연못가에서 잠시 쉬고 있다가 깜짝 놀랐대. 연못에 부처님의 형상이 비치는 거야. 노인이 말한 땅이 이곳이란 걸 알아챈 의상은 화엄경을 독송하며 설법하기 시작했대. 그때 노인과 여덟 명의 동자가 연못에서 올라와 설법을 듣더래. 그리고 노인이 말했대.

“이곳의 산세가 부처님이 계셨던 천축산의 형태와 같습니다. 또한 연못에 비친 부처님 모습이 평소 설법하시던 부처님과도 같습니다.”

그러고는 아홉 명 모두 용으로 변해 승천하였다는 거야.
그 후 의상이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니 그 말이 맞는 거 같았어. 의상은 그들이 있던 연못을 메우고 그곳에 금당을 세웠대. 부처님의 그림자가 있던 위치에는 무영탑을 세웠는데 현재의 삼층석탑이래. 그리고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쳤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불영사라 이름 지었다고 하는군. 

불영사의 3대 보물은 대웅보전과 그곳에 소장된 영산회상도, 그리고 응진전이다. 대웅보전엔 부처님의 진신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 부처님의 나라인 스리랑카에서 모셔 왔다고 한다. 불영사 영상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의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응진전은 조선 중기 건물로 울진군에서 금강송으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한다. 역시 보물은 보물이다. 고요하면서도 묘한 기운이 숨결 따라 전해지는 듯하다. 

불영사에는 숨바꼭질하듯 숨은 볼거리 찾는 재미를 뺄 수 없다. 대웅보전 기단 밑 좌·우에 놓인 돌거북을 찾았다. 이 특이한 구상은 불영사의 자리가 화기를 품고 있는 곳이라 수신인 거북으로 불기운을 누르기 위함이라 한다. 

불영사를 찾은 핵심지인 불영지. 불영지에 비친 부처상은 불심이 깊어야 볼 수 있다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심을 불러 모은다. 불영지에서만 볼 수 있으니 꼭 보겠다는 일념이 통한 건지, 보인다. 만약 수련 잎이 연못 위를 덮은 계절이었다면 못 보았을지도 모른다. 반면, 수련을 못 보아 아쉬움이 생기지만 세상만사가 한꺼번에 몽땅 주는 법은 없더라. 그보다 연못 안에 비친 부처의 모습을 보았으니 대만족이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옛 부처의 그림자. 물론 지금은 재현의 의미다. 그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모든 건 마음 안에 있는 것. 그 안에서 움직이는 그 무엇이 진실 아닐까. 내가 찾고자 하는 건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내 안에 잠시 가라앉아 있던 진심 한 조각 불러내고 싶은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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